동네풍경_#2. 가게 : 시

2016. 8. 26. 22:232016 동네풍경배달/가게


아몬드 베이커리




이곳의 새벽은 분주합니다 


밀가루 포대를 실은 트럭이 비밀스럽게 다녀가면

테이블 위로 쏟아지는 새하얀 함성들


그 안에 손을 찔러 넣을 때마다 

이루 말할 수 없게 뭉클해집니다 


이제는 가루가 된 누군가의 속살을 만지는 기분

타오르고 타오르다 주저앉은

그러나 나는 죽음을 삶으로 되돌리는 손을 가지고 있어요

악몽을 녹이는 설탕을, 추억을 부풀리는 이스트를 넣어줍니다


이곳은 향긋한 꽃들이 피어오르는 정원

이곳의 빵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평생을 빚어온 모양도 마음의 온도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

오늘은 새카만 속을 채워 넣어야 하는 순간에 손이 헛돕니다


태양이 떠오르는 속도에 맞춰 

노릇노릇 익어가는 이야기들

정오, 가장 많은 꽃들이 피어나는 시간입니다


이제는 기다리는 일만이 남았습니다

이렇게 홀로 앉아 빵마다 낯선 이름을 붙여보기도 해요

호시절, 폭풍우, 토성의 고리…….

맛볼 수 없어 아름다운 것들의 이름을


이곳을 찾는 이는 예전만큼 많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하루는 쉽게 눅눅해지고

어떤 하루는 떨이로 팔려나가기도 하지만


봉지 가득 빵을 사들고 귀가하는 어깨를 봅니다

뒤축이 닳은 구두가 저녁에서 밤으로 그를 데려갑니다


나는 그런 이들을 위해 밤늦도록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운 것들에게로 되돌아가기 위한 등대가 되어










* * * 아몬드 베이커리는 성남 수진동에 자리한 작은 동네 빵집이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빵집이었는데 그곳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났다. 우리 할머니가 좋아하시던 전병이나 종합캔디가 진열장 한편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 

매일 새벽 6시에 문을 연다고, 이곳에서 빵집을 한지도 벌써 20년이나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주인아주머니 머리가 희끗희끗했다. 빵 맛은 투박했지만 저렴했고 그래서 오랜 시간 따뜻했다. 잊고 지내던 유년의 시간으로 진입하는 일은 겨우 문턱 하나만 넘으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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