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풍경 _ #4.사람 : 글

2016. 10. 17. 14:322016 동네풍경배달/사람

[수진동 구전 역사 탐방]

 ‘동네배달풍경’의 마지막 글에는, 꼭 동네 분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습니다. 우연히 동네 아이들의 대화를 듣게 된 것이 그 계기입니다. 아이들은 과자를 사는 일로 아웅다웅 중이었는데, ‘어디 아주머니는 무섭다.’, ‘어디가 싸다.’, ‘거긴 너무 집에서 멀다.’하는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습니다. 재미있게 듣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골목 골목을 다녔다한들, 그 곳에서 살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걸요. 그리하여 동네분들의 수진동과 저의 수진동이 얼마나 같고 다를까하는 궁금증과 담 너머의 안부를 묻고 싶은 호기심으로 무작정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우선은 가장 자주 찾아뵌 슈퍼 아주머니를 시작으로, 조금씩 얼굴을 익혀왔던 동네분들에게 여쭤보았습니다. ‘수진동에서 산다는 것은 어떻습니까?’



[슈퍼 어머님]

#에어컨보다 #손부채가 #최고 #얼린 물 #하나 줄까?


"옛날에는 과자가 많이 팔렸지. 애들이 많았거든. 이 골목에서만 십년 훌쩍 넘게 장사를 했으니까. 그때는 골목에 애들이 바글바글했는데, 이제는 애들은 별로 없어. 다들 아지매, 아저씨들만 사니깐, 라면하구 담배만 나가지, 뭐. 그래두 옛날에는 술 취한 사람들 많아가지구 힘들었는데, 요즘엔 그런 건 또 없대. 왠만치 알고 지내고들 하니까는 안 그러지. (손 부채를 부치며) 맨날 여기 앉아있으니까, 밖에 사람들 옷 입고 다니는 거보고 여름간다 겨울간다 그러는 거야. 인젠 여름도 다 갔지. 아가씨도 봐, 바지가 기네. 긴 거 입었네."



[검은 스봉(바지) 할머님]

#올 해로 #아흔 #하고도 # 하나


“(폐지 모으시는 아저씨가 수레를 끌고 지나가시자) 아이구, 저 소리 때문에 죽겠어요. 낮에는 괜찮은데, 밤에는 소리 때문에 죽겠어. 늦게까지 바시락거리구, 테이프 딱딱 끊는 소리에 그냥. 잠이 깨 가지구. 그래두 그렇게 움직이니까 건강한 거야. 저 아저씨두 나이가 많아. 근데두 정정하잖아. 부잣집이야, 저 이도. 근데 심심하니까 하는 거여. 아가씨는 이거 하면 얼마씩 줘? 나라에서?”



[파란 잔꽃 남방 어머님]

#46년 째 #거주 중 #우리 아들이 #마흔 일곱살

“옛날에는 여기가 다 오두막집마냥 생겼었으. 철거민들 살 적에는. 근데 다 지었지들. 인제는 다 벽돌집으로 바뀌었는디, 거시기 그 전에는 기와랑 슬레또(슬레이트)였다가, 인젠 다 벽돌집으로 바뀐거여. 진짜 겁나게 추웠지. 웃풍도 심하고. 누웠으면 밖에가 다 보여. 뚝섬 살다가 일루 이사왔는디. 그때 우리 아들이 여서 국민핵교 들어가구. 그 아들이 인젠 마흔 일곱이여. 그래도 나는 이 동네에서 싸움도 않고 살아봤어. 이 동네에서. 오래 살아서 대충 마을 사람들 알기는 하지.”



[보라 땡땡이 남방 어머님]

#뽀글머리 파마 #보다 #단발머리가 #관리가 편해


“그전에는 여게가 다 산이었어, 산. 산 위에다가 집 지은거야. 길도 그냥 땅길이고. 옛날에는 여기 송장도 많이 캐내고 그랬어. 여게가 산이 돼갖고. 비오면은 골치 아펐어. 여기는 위니까 갠찮애도, 밑에 사는 사람들이 문제지. 지금은 잘 빠져서 갠차네. 인제는. 아가씨는 결혼했어? 했구만. 아가는? 없구만. 애는 낳야 혀. 둘은 낳아야 혀.”



[흰색 모시 남방 어머님]

#스티로폼 박스 # 방석으로 #딱 #엉덩이 #넘나 #편한 것


“더워서 나와 앉아있는 거야. 더워서. (웃음) 뭐 얻어먹을라 하는 거지맹키로. (웃음) 나도 이 동네 산지는 얼마 안됐으. 그 전에도 왔다 갔다는 했지. 친척이 여 있어 가지구. 늙으니깐 인제 심심해. 외로운 것 보다두 심심하니까는. 덥고 하니까 다들 나와가지고 얘기하다가, 해지면 또 들어가고. 시원하니까 나와 앉었는거야들. 집에 들어 앉어 있으면 치매나 오지.”



[태율이 어머님]

#내 아들 #태율이 #뭐 주웠어요? #나뭇가지구나


“결혼하면서부터 여기 와서 살았어요. 5년 정도 됐나? 요즘에는 동네에 중국분들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요 앞에 K마트라고 있거든요. 그 앞에서 한 번씩 파티같은 거 하시는지 중국 노래도 들리고. 내가 중국에 살고 있나 헷갈릴 정도죠. 신랑 말로는 성남의 차이나 타운이라고, 여기가.(웃음) 아직 아기가 어린이집을 안 다녀서 놀이터 자주 오는데, 여기서도 중국어가 많이 들려요. 살기가 편하죠. 여기가. 성남 다른 데 보다 집값도 저렴하고, 집 계약할 때 조약 사항에 재개발될 수도 있다는 문구도 있었어요. 근데 살다보니까 알겠는 게, 오래되어서 그런 말이 있는 거지. 금방 재개발이 될 것 같지는 않아요. 아기가 어렸을 때는 집이 낡아서 좀 고생했어요. 방음이 안 되고, 집이랑 집 사이가 너무 가까워서 아기가 재워 놓으면 금방 깨고 재워 놓으면 금방 깨고. 그래도 괜찮은 동네라고 저는 생각해요. 마트도 가깝고, 놀이터에 사람도 많고요.”



[수정 초등학교 예린이]

#앞머리는 #엄마가 #집에서 #잘라주셨어요 #길었는데 #이렇게 #싹둑


“과자 살 때는 세계유통 많이 가요. 거기가 가까워요. 심부름 갈 땐, E마트로 가요. 엄마가 영수증 꼭 받아오래서. 이 동네에서 살면서 제일 싫은 점은요, 길에 쓰레기가 너무 많은 거요. 냄새가 펄펄 나요. 담배꽁초도 있고, 플라스틱도 있고. 예를 들면 저런 거(버려진 물병을 가리키며). 어린이가 담배를 피우지는 않으니까, 다 어른들이 버린 거잖아요.”



[수정 초등학교 효연이]

#할머니 #너무 #무서워요 #조금만 #친절하게 #해주실 수 없나요? #사랑해요


“애들이 제일 많이 모이는 데는 학교 운동장이에요. 막 축구하거나, 그네타거나, 야구하거나, 그렇게 놀아요. 제일 많이 하는 거는 숨바꼭질 그런 거. 소꿉놀이는 잘 안해요. 이제는 유치해서. 저는 8살 때까지는 중국에서 살다가 여기로 이사왔어요. 여기는 책도 주고 밥도 주고 그러는 게 좋아요. 결론은 좋다. 공짜가 좋다. 보람(?)차요.(웃음) 중국어는 이제 다 까먹었어요. 니하오?! 만 알아요.”



[7살 예린이 동생]

#집에 #인형이랑 #장난감이랑 #백 개 #있어요


“저는 언제 진주 가봤는데요. 거기도 좋았어요. 그래도 엄마랑 아빠랑 언니랑 여기 있어서 여기도 좋았어요. 친구들도 있고요. 근데 거기도 좋았어요. 할머니가 있어서요. 얘도 나랑 같은 유치원 다녀요. 유치원 가기가 힘들어요. 길이 이렇게 (높다는 제스쳐). 그래서 너무 힘들어요. 다리가 아파서요.”



 동네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 가지 흥미로운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수진동의 옛날이야기는, 대개 개인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며 가늠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그게 언제냐면, 우리 딸이 결혼했을 때니까, 24년 전에 저기 뒷골목에 살 때야.’와 같은 말씀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러다 옆에 계신 아주머니께서 ‘아니지. 그 때, 내가 갔었는데 그 결혼식을. 여기 이사 온 다음이야.’하고 정정해주시기도 하고요. 그러니 결국에는 수진동의 역사란, 개개인의 삶들이 모이고 엉키며 이룩해 온, 장엄한 삶의 연대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사람, 두 사람 딛은 발자국이 숲과 들에 길을 내는 것처럼요.

 그렇게 길과 길이 만나는 곳에 마을이 생기고 수진동이란 이름이 붙고, 한 사람 두 사람 모여들어 살다보니, 이제는 늦더위를 피해 골목에 모여 앉아 인절미를 나누어 먹는 그 곳에, 제가 찾아간 것이겠지요. 삶을 ‘산다’는 것과 어딘가에서 ‘산다’하는 것이 같은 뜻임을, 국어사전이 아닌 수진동 동네 분들에게서 배웠습니다. 살고 있는 곳을 ‘나의 동네’라 부를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그런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얼굴들이라는 것을요.

 

이제 이 글을 읽는 분들께도 다시 안부를 여쭙습니다. 그 곳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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